[범물시니어기자단] 근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약전골목, 그리고 '옛날 다방 약차(쌍화차)' 기억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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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태문 작성일 26-04-22 11:59 조회 55회 댓글 0건본문
한의학의 뿌리부터 근대 시민운동, 그리고 다방 문화까지 도심 속 역사 탐방기
약전골목에 들어선 순간, 어디선가 스며 나오는 한약 향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하다. 마치 아주 오래전 기억을 다시 꺼내 보는 기분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늦추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급하게 살아왔을까, 자신에게 묻게 된다.
약전골목은 전통과 근대가 켜켜이 쌓인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이다. 이번 탐방은 한의학 박물관에서 시작해 옛 대구 제일 교회, 구 교남 YMCA 회관, 그리고 미도다방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이다.
약전골목은 2001년 한국 기네스 위원회에서 국내 최고의 약령시로 인증
한의학 박물관 안에 들어섰을 때, 이상하게도 숨을 크게 쉬게 되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약재들은 그저 식물의 조각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과 회복, 기다림과 희망, 결국 삶은 그런 것들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이곳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설명은 없지만, 이해는 된다. 한의학 박물관은 우리 전통 의학의 뿌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한약재와 침구 도구, 옛 의서들이 전시되어 있어 조상들의 지혜와 과학적 접근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체질과 자연의 균형을 중시하는 한의학의 철학은 현대 의학과는 또 다른 깊이를 느끼게 했다.

약령 시장은 조선 후기인 1658년에 개시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구의 한약재 시장이다. 이 시장은 대구읍성이 철거된 후 1908년에 약전골목(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2004년에는 한방 관련 분야 최초로 한방특구로 지정받아 매년 5월 대구광역시청이 주관하는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개최되며, 대구의 한방 문화의 요람이다.
근대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옛 대구 제일 교회
햇빛이 기울 무렵, 박물관 옆에 마주한 옛 대구 제일 교회는 한 장의 오래된 사진 같았다. 붉은 벽돌은 빛을 머금고 있었고, 나는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그 앞에 서 있었다. 그저 ‘오래됨’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근대 건축의 상징인 옛 대구 제일 교회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서양식 건축 양식이 도입된 이 건물은 당시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며, 지금까지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크다.

옛 대구 제일 교회는 1893년 선교사 재위량 목사가 대구 도성에 첫발을 디딤으로써 시작되었다. 1896년 남성로 구 예배당 용지를 매입하고, 1897년 초대 목사인 안의와 선교사가 교회를 설립하였다. 옛 대구 제일 교회는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가 한국 기독교 사적 제13호로 지정하였다. 현재 대구 기독교 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교육 및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 대구 제일 교회는 동산동(전 영남신학대학교 용지) 일대에 새 성전을 건축하여 1994년 6월 이전하고, 계성, 신명 학교 등 교육기관과 동산의료원을 설립하였으며, 2023년 교회 창립 13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다.
구 교남 YMCA 회관은 일제강점기 3.1 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화합 공간이었다.
이어 길 건너 구 교남 YMCA 회관은 시민운동과 교육의 중심지로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근대기 이후 지역 사회의 변화와 시민 의식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사회의 기억’으로 기능하고 있다. 구 교남 YMCA 회관은 근대건축물로, 1914년에 미국의 블레어 선교사가 건립한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1층과 2층 사이를 돌림띠로 장식하고 창호 상부는 아치로 인방을 확보하여 사각형의 창문을 설치하는 등 1910년대~1920년대 조적조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구 교남 YMCA 회관은 물산장려운동, 기독교 농촌운동, 이만집 목사 3.8만세 운동 등 대구의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 공간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교육, 야학과 강연 장소로 쓰였으며, 그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등록문화재 제570호, 한국 기독교 사적 15호로 지정되었다. 현 YMCA 대구지부는 반월당에 있다.
100년의 역사, 미도다방은 '아름다운 도시 속의 다방'이라는 뜻이다.
탐방의 마지막은 대구시 중구 진 골목에 있는 미도다방이다. 다방에 들어서니, 향토 시인 전상열의 ‘미도 다향’이 크게 쓰여 있다. 그리고 벽에는 옛 문인들의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그림·글씨 그리고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곳이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정치인과 유림, 문인, 화가들이 다녀가는 명소였고, 지금도 시니어 분들이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들이 많다고 한다.

약령시의 좋은 약재로 직접 달인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약차(쌍화차)는 약재 냄새가 오래 밴 골목의 다방이기에, 어쩐지 더 깊은 맛이 우러나는 듯하다. 특히 백바지, 백구두, 꽁지머리 등 한껏 멋을 낸 어르신들의 추억의 공간으로, 60~70년대 시간 여행을 하는 곳이다. 그렇다, 그저 그 공간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약전골목은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여정이었다. 그날 나는 많은 것을 보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것들이 어떻게 사람을 붙잡는지 느꼈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골목과 공간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잠시 잊고 지낸 자신을 다시 만난다.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는 익숙한 도시 속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이런 공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최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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