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물시니어기자단] 풍속화가 김홍도 역장 시절 만나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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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의호 작성일 26-07-23 11:37 조회 4회 댓글 0건본문

찰방이 관할하는 안동 안기역과 이어지는 운산역 등으로 가는 길을 형상화한 전시물. [사진 송의호]
안동 안기찰방 지내며 편액 등 남겨
안동 도심엔 단원로(檀園路)가 있다. 조선 후기 천재 풍속화가 김홍도(1745~1806 이후)를 기리는 길이다. 안동시내와 운안동 일대를 가로지르는 1.7㎞ 길이다. 옛 안기역이 있었던 일대에는 김홍도공원도 조성돼 있다. 대체 무슨 인연일까?
김홍도는 1784년부터 1786년까지 안동의 안기도(安奇道) 찰방(察訪)이란 종6품 벼슬을 지냈다. 흔히 안기역(安奇驛) 찰방으로 부른다. 요즘으로 치면 안동역장쯤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안기도 찰방 시절 안동을 배경으로 한 김홍도의 그림은 여태 확인된 게 없다.
7월 12일 안동 도산서원에 들렀다가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인근 한국국학진흥원을 찾았다. 유교문화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안기역 1485’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처음 접하는 주제여서 궁금했다.
1485년은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된 해다. 그때 역참제도가 함께 정비되었다고 한다. 당시 정비된 길과 역은 나라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안기도는 한양과 경북 북부지역의 동쪽과 남쪽을 연결했다.

'안기역지'에 기록된 역대 찰방 명부. 왼쪽에서 두 번째 김홍도 이름과 재직 연한이 나와 있다[사진 규장각]. 오른쪽 사진은 김홍도가 쓴 체화정의 '담락재' 편액[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조선시대 교통수단 역참 주제 전시
그 시작점인 안기역은 오늘날처럼 열차가 오가는 역은 아니지만 사람과 말, 공문서와 물자가 오가던 중요한 플랫폼이었다. 『경국대전』에는 전국 41개 역이 나온다.
찰방은 왕명을 담은 공문서 전달에 필요한 말이나 시설을 지원하고 관원의 왕래와 지방관리 부임과 관련된 편의를 제공하고 공물 수송 등을 수행했다. 안기찰방은 안기역을 포함한 12개 역을 관할하고 임기는 30개월이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패(馬牌)는 관원이 공무로 지방에 내려갈 때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증표였다. 새겨진 말의 수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의 수가 된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김홍도의 풍속화 ‘편자박기’ 그림 사진이 걸려 있다. 장정 두 사람이 말의 네 발을 묶어 놓고 발굽에 편자를 박는 그림이다. 찰방 경험이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김홍도는 안동에 머물며 인근 관료, 지역 인사들과 교유했다. 안동 체화정의 담락재와 임청각의 이가당 현판 글씨를 써준 일화가 편액과 함께 전하고 있다. 또 청량산 일대에서 시회(詩會)를 즐기고 남긴 「청량연영첩」도 안동 시절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이어진다. 휴가 기간 안동을 지나면 도산서원과 함께 한 번쯤 들러 볼 만하다.
송의호 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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