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물시니어기자단] 역사 공부하러 경상감영공원에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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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영선 작성일 26-02-23 13:23 조회 56회 댓글 0건본문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이다. 감영(監營)은 조선시대 각 도를 관찰하던 관청으로 전국에 8곳 있었다. 초기에는 경주, 상주, 안동 등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니다가 17세기 초에 이르러 이 곳에 정착했다.
경상감영은 선조 34년(1601년) 대구로 옮겨 왔고 지금의 중구 포정동 21에 자리잡았다. 경상감영은 대구의 도심 중앙에 위치하며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500여m 거리에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경상감영은 1896년(고종 33년)에 지방행정을 13도제로 개편한 이후에도 경상북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경상의 이름은 경주와 상주에서 따왔다. 1910년부터 1965년까지 이 곳을 경상북도청사로 사용하였다. 청사가 산격동으로 이전된 이후 대구시에서 1970년 중앙공원으로 최초 개장하였다가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개칭되었다.
경상감영공원은 1만6,600㎡의 터에, 1997년 도시미관을 위해 담장을 허물고 전체를 공원으로 재조성하였다. 대구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감영공원내에 있는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대구시유형문화재 제1호)은 과거 경상감영이 달성에서 대구로 이전될 때 건립되었으며, 화재로 3차례 소실된 것을 계속 증·개축해왔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주심포 양식과 익공식의 절충형 공포로 건축되었다. 선화당(宣化堂)은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올 때 조성되었다. 이후 1670년, 1730년, 1806년 세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 건물은 1807년 관찰사 윤광안이 지은 것이다. 현존하는 관아 건축이 별로 없어 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관찰사의 처소로 사용한 징청각(대구시유형문화재 제2호)은 관찰사의 안채, 즉 내아 관사로, 초창기 공원을 조성할 때 보수되었다. 징청각(澄淸閣)은 1601년에 지어졌으나 선화당과 함께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 건물은 1807년 다시 지은 것으로 앞면 8칸 옆면 4칸 팔작지붕이다.
그 밖에도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의 종이 있으며,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 29기를 모은 비림, 하마비, 측우대, 도로원표 등이 있으나 경상감영의 옥이나 객사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안타깝다.
하마비(下馬碑)는 공원입구에 있는데 비석에는 ‘節度使以下皆下馬’라고 새겨져 있다.
‘절도사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말에서 내려 들어오라’는 뜻이다.
측우대(測雨臺)는 선화당 앞에 있다. 받침대인 측우대만 있고 측우기는 없는데 이마저도
진짜는 서울기상청에 전시되어 있고(국보 제330호) 이것은 모조품이지만 2020년 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어 대구도 이제 국보를 가지고 있는 도시가 됐다.
도로원표(道路元標)는 도로의 출발점이나 종점,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것으로 도시 간 도로의 기준이 되는 지점이다. 원래 지하철 중앙로역 북쪽 출입구 앞 네거리가 도로 중심인데 도로에 설치 할 수가 없어 1999년 서쪽으로 215m 떨어진 감영공원에 세웠다.
안영선
[출처] 역사 공부하러 경상감영공원에 가 보자|작성자 범물노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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