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물시니어기자단] 2월이 대구시민에게 던지는 4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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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의호 작성일 26-02-24 14:24 조회 57회 댓글 0건본문
2월 16일 아침 대구 중앙로역에 내려 지하도를 걷다가 추모벽을 맞닥뜨렸다. 벽 앞에 나비 그림과 함께 ‘대구지하철참사 23주기’ 패널이 세워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류시화 시인의 시 아래 붉게 “그날을, 그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라 쓰여 있다.
다시 그 아래 불타는 지하철 전동차에서 남긴 희생자의 마지막 문자 몇 개가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02/18 10:25AM.” 지금도 눈물이 핑 돌고 먹먹하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었다.
2003년 2월 18일. 올해가 벌써 참사 23주기다. 객차 12량이 불타고 자그마치 192명이 사망했다. 이는 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에 해당한다. 밝혀진 대로 참사 원인은 뇌졸중으로 심한 우울증을 겪던 김대한(당시 56세)이 신변을 비관하다 불특정 다수와 함께 동반자살을 기도한 것이었다. 이후 전동차 좌석의 불연재 도입 등 여러 시설 개선이 제도화되었다. 미해결로 남은 것도 있다.
참사 당시 필자는 중앙일보 기자로 산격동 경북도청 기자실에 머물고 있었다. 경찰의 첫 보고는 “중앙로역에서 연기가 난다”였다. 그러고 기사 마감 시간인 오후 5시쯤 되어서야 지하철 중앙로역에 화재가 나 진입이 불가능하고 경대병원 응급실이 난리가 났다는 게 속속 전해졌다. 중앙일보는 다음날 특별취재팀이 꾸려져 필자가 팀장을 맡아 사회부 기자 등 10명이 현장을 뛰었다. 서재에 보관 중인 당시 기사 스크랩을 꺼내 보았다. 연일 대문짝만한 기사가 지면을 메웠다. 취재 경쟁은 치열했다. 일본 등 외신 기자도 가세했다. 필자는 당시 거의 일주일을 신문사 한쪽에서 토막잠을 자며 보냈던 기억이 난다.
중앙로역 추모벽 뒤로 들어가니 사건 당시 불에 그을린 벽과 화재 열기에 수화기가 녹아내린 공중전화, 혈압측정기 등이 그 모습 그대로 처연히 남아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우리는 다중시설을 지혜롭게 이용하고, 사고 시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가?
2. 우리는 김대한 같은 약자 이웃을 도울 마음의 여유가 있는가?
이은경(63‧범물동)씨는 “시민들이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를 지금보다 더 깊이 추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는 2022년 10월 29일 밤 핼러윈을 앞두고 인파가 몰리면서 골목에서 159명이 압사하는 대형 참사가 다시 일어났다. 슬프지만 참사와 희생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대구시민주간이 시작되는 2월 21일은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이다. 일제강점기인 1907년 이날 대구의 민족지도자 서상돈과 김광제 등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나라 빚을 갚자”는 취지의 운동을 대구에서 공식 제안하고 발의했다. 이후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나라의 경제적 예속을 막자는 애국운동이었다. 관련 기록물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구광역시는 이 역사적 의미를 기려 이날을 대구 국채보상운동 기념일로 정했다. 대구광역시는 이날부터 3월 31일까지 국채보상운동기록전시관MOA 갤러리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물 진본 특별전’을 연다. 국채보상운동은 질문한다.
3. 우리는 나라가 어려우면 기꺼이 내 재물을 내놓을 수 있는가?

국채보상기성회취지서. [사진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2월 19일 대구지하철 2호선 범어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제66주년 2‧28민주운동기념 특별기획 사진전’을 만났다.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열두 번째 전시였다. 당시 학교 조회단에서 결의문을 낭독하는 경북고 이대우, 안효영의 모습. 집결지인 반월당으로 질주하는 학생시위대의 모습. 사복 경찰관에게 구타당하고 연행되는 학생들 등. 현장 사진 말고도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AP통신 등 외신이 다룬 기사도 걸려 있다. 사진을 차례로 들여다본 뒤 필자는 방명록에 “놀라운 정신!”이란 감회를 한 줄 남겼다.
2‧28의 함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었다.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경북고‧경북여고 등 대구지역 8개 고교 학생이 중심이 돼 일어난 한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이다.
2‧28은 이후 대전의 3‧8민주의거, 마산의 3‧15의거로 이어졌고 결국 4‧19혁명으로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오후 1시 하야를 선언했다. 두렵고 엄혹한 시기 민주주의를 외친 2‧28의 함성은 한국을 일깨웠다. 기념사업회는 “2‧28은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뿌리로서 학생과 대구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밑거름 삼아 전국으로 퍼져나간 민주주의 실천운동”이라고 정리한다. 대구광역시는 이를 기념해 2월 27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기억과 울림’ 특별연주회를 마련한다. 2‧28은 질문한다.
4. 우리는 정의를 생각하는가?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2.28 당시 경북도청으로 향하는 학생 시위대. [사진 2.28기념사업회]
대구광역시는 올해 시민주간에 대구의 역사와 정신을 되새기고 ‘비도진세(備跳進世)’의 의지를 다지겠다는 사자성어를 붙였다. 도약을 준비해 세계로 나아겠다는 결심일 것이다. 2월은 대구가 슬픔과 아픔을 딛고 던지는 4가지 질문에 답하며 기쁨의 함성을 지를 준비를 하는 달이 되었으면 한다.
송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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