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물시니어기자단] 약령시에서 본 시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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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선우 작성일 26-05-20 17:32 조회 10회 댓글 0건본문

[약령시한의학박물관 내에 전시된 각종 침구류와 한약을 만드는 약연과 약탕기] 사진/서선우
최근 시니어 기자단은 대구 중구(남성로 51-1)에 위치한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을 찾았다. 오랜만에 방문한 약령시 일대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에는 한산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한약재 냄새로 가득하던 골목도 조용했다.
대구 약령시는 1658년 조선 효종 때 임의백(任義伯) 관찰사가 처음으로 경상감영내 약령시를 개장하였고, 1908년에 이충구(李忠求) 관찰사가 현 위치로 약령시를 이전했다. 대구 약령시는 봄과 가을이면 전국의 약재상들이 몰려들어 거대한 약재 시장을 이루었다. 당시 대구는 물류의 중심지였고 약령시는 전국 한약재 유통의 핵심 역할을 했다.
약령시는 단지 약재 거래만 이뤄지던 공간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 가운데 하나였고 민족의식이 살아 숨쉬던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조달과 연락의 거점이 되어 지속적인 탄압을 받다가 1941년 약령시가 폐쇄되고, 광복 후 약령시가 재개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폐지되었다. 6.25 전쟁 이후, 한약재 상설시장으로 남성로 일대 약전골목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과거 약령시는 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간이었다. 몸이 허하면 보약을 짓고, 계절이 바뀌면 한약 한 첩씩 챙겨 먹었던 기억이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풍경도 달라졌다. 건강기능식품과 병원 중심의 의료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전통 한약 시장은 활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주변 상권 역시 세월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박물관 내부는 매우 깨끗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었으며, 전시 구성도 이해하기 쉽게 꾸며져 있었다. 한의약의 역사와 진기한 약재들, 약탕기와 침구를 비롯해 전통 약재 도구 등이 현대적인 전시 방식으로 소개돼 있어 인상적이었다.
1910년대 약전골목을 재현한 객주집, 도매상이 쉬어가는 주막, 약재가 가득한 한약방 등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2층 공간은 쌍화탕을 한 잔씩 마시고, 한방족욕체험을 할 수 있도록 체험형 공간이 마련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의 다양한 자료와 현대적 전시공간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노력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약령시는 예전보다 한산해진 모습이다. 한약방도 줄었고 젊은 세대의 발걸음도 많지 않다. 시대 변화 속에서 전통 한의학 시장 역시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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