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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물시니어기자단] 서학과 동학의 반월당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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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의호 작성일 26-03-20 13:07 조회 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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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 지하 1층 성당. 꽃 묶음 앞에 '이 제단에 이윤일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는 팻말이 있다. [사진 송의호]


서학 이윤일과 16인의 관덕당 참형

3월 4일 시니어기자단이 관덕정순교기념관을 찾았다. 대구시내 한복판 지하철 반월당역 23번 출구를 통해서다. 기념관은 조선시대 관덕당(觀德堂)이 있던 옛터에 1991년 세워졌다. 이름 그대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필자는 두 번째 방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학(西學)인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들이다, 모두 참수형을 당했다. 1815년(순조 15) 을해박해 시기 7명을 비롯해 1827년 정해박해 3명,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7명 등 모두 17인이다. 이들 중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이윤일(세례명 요한)은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聖人)에 올랐으며,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수호하는 이른바 ‘제2 주보성인’이다.

제2전시실에 관덕당의 유래가 정리돼 있다. 관덕당은 본래 1749년 경상도 관찰사 민백상이 세워 활을 쏘고 말을 타는 등 무과 시험을 보던 도시청(都試聽)으로 쓰였다고 한다. 관덕당의 위치는 아미산 아래 대구읍성의 남문, 즉 영남제일관 밖 서남쪽 200보 지점이었다. 이후 대구지역 3대 형장 중 한 곳이 된다.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건립한 순교기념관은 이 관덕당의 앞마당에 들어선 셈이다. 기념관 안내자는 “순교자들이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진보 머루산 등 경상도 산골로 숨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충청도 홍주 출신 이윤일은 문경 여우목에서 몰래 전교하다 체포됐다고 한다.

 

전시실에는 이윤일의 순교 기록인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유해를 옮길 때 사용한 목관, 십자가 등이 진열돼 있다. 지하 1층엔 성당이 있다. 성당 앞 제단에는 이윤일의 유해가 묻혀 있다. 160년 전 그날의 통곡을 떠올리며 기도했다. 관덕정 꼭대기 층은 십자가를 진 예수 등이 전통 단청 문양으로 그려져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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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반월당 현대백화점 앞 최제우 순도비. 비 왼쪽 도로 뒤편으로 보이는 누각이 관덕정순교기념관이다. [사진 송의호

동학 최제우의 관덕당 참형과 효수

놀라운 전시물은 또 있다. 2층에 전시된 ‘최복술 사적’(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이다. 최복술이 누구인가. 바로 동학(東學)을 창시한 최제우(1824~1864)의 어릴 적 이름이다. ‘최제우는 참형을 당했으며 머리는 남문 밖 길가에 사흘 동안 내걸렸다’는 일대기 등이 적혀 있다. 다른 종교지만 그 창시자의 흔적을 기꺼이 알리는 천주교의 너른 도량에 고개가 숙여진다. 최제우 참형 장소 역시 이 관덕당이다. 162년 전 그날의 통곡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관덕정을 나와 일행은 도로 건너 현대백화점 앞으로 이동했다. 횡단보도 한쪽에 2017년 천도교가 세운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가 있다. 최제우는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려 동학으로 진리를 펴다가 좌도난정(左道亂政, 유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주장으로 세상을 어지럽힘) 의 죄목으로 순도(殉道)했다는 내용이다.

1863년 10월 최제우는 영덕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 후천개벽 시대가 도래함을 세상에 알렸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못 돼 조정은 선전관 정운구에게 최제우 체포 밀명을 내린다. 정운구는 경주로 내려간다. 그는 장계를 올렸다. “문경새재부터 경주까지 400여 리 10여 고을에서 날마다 동학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 날이 없다. 저잣거리 아낙네와 산골 아이들까지 동학의 글을 외며 전한다.” 그렇게 동학은 당시 사람들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고 신분 타파와 평등사상은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운구는 마침내 그해 12월 10일 밤 최제우를 체포한다. 서울 압송이 시작됐다. 행렬이 과천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철종 임금이 승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상이 나면서 최제우를 대구 경상감영으로 돌려보내 문초하라는 어명이 내려진다.

 

최제우 순도비 가까운 곳에는 ‘관덕당 옛터’ 표석도 세워져 있다. 오늘날 동학은 발상지인 경주와 최제우는 잊힌 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정읍 일대와 전봉준을 먼저 떠올린다. 역사는 관심을 가지는 만큼 지역의 자산이 된다. 서학과 동학의 반월당 통곡을 떠올리며 이 땅 선각자들의 안식(安息)을 빈다. (참고자료: 관덕정순교기념관 안내 팸플릿, 대구경북 유산가치의 재조명-동학사상. 대구경북연구원, 2020)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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