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물시니어기자단] 모명재에서 다시 충무공 이순신의 향기를 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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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의호 작성일 26-03-20 13:14 조회 72회 댓글 0건본문

기자단이 모명재를 살펴보고 있다. 건물 앞면 네 기둥에 이순신이 두사충을 위로하는 시가 걸려 있다. 오른쪽이 신도비. [사진 송의호]
이순신과 두사충 “오늘 한 잔 술로 정을 나누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한창인 3월 11일 시니어기자단이 대구 만촌동 모명재(慕明齋)를 찾았다. 434년 전 조선‧명나라와 일본이 벌인 임진왜란을 떠올리면서다. 필자는 2018년에 이은 두 번째 취재 방문이다.
실기(實記)에 전하는 그대로 모명재는 원군으로 왔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에 뿌리내린 명나라 모명(慕明) 두사충(杜師忠)을 기리는 재실이다. 모명은 두 차례 조선으로 파병됐다. 기자단은 현장 설명문을 읽고 해설을 들었다. 1592년(선조 25) 12월 두사충은 조선으로 출병한다. 그는 이여송 휘하에서 병영과 진지를 잡는 수륙지획주사(水陸指劃主事)를 맡았다.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전쟁 중 주둔지와 진지를 어디에 둘지 정하는 일이다.
시작은 좋았다. 1593년 1월 이여송은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점령한 평양성을 탈환한다. 이후 여세를 몰아 개성으로 진격하지만 명나라 군대는 임진강 벽제관 전투에서 왜군 복병에 크게 패한다. 그 뒤 전쟁은 진정되고 두사충은 중국으로 돌아갔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한다. “두사충은 다시 조선으로 들어왔어요.” 해설을 맡은 스토리텔러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 직책은 매부인 진린(陳璘) 수군 제독의 비장(裨將)이었다. 복야(僕射) 벼슬이다. 이순신과 진린이 이끄는 조명(朝明) 연합군은 노량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다.
스토리텔러는 손을 들어 모명재 기둥을 가리킨다. 네 기둥에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北去同甘苦(북거동감고, 북으로 가서는 고락을 같이 하고)/東來共死生(동래공사생, 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같이했네)/城南他夜月(성남타야월, 성 남쪽 타향 달빛 아래)/今日一杯情(금일일배정, 오늘 한 잔 술로 정을 나누네)’
“충무공이 술 한 잔을 건네며 두사충을 위로하는 시입니다.” 모명재 앞 공간에는 이순신과 두사충이 마주 앉아 술 한 잔을 나누며 시를 주고받는 형상의 동상이 새로 들어섰다. 두사충은 한산도에서 이순신을 만났다. 충무공은 초면이지만 옛 친구를 만나듯 정을 냈다. 이순신의 여유와 따스한 인품이 느껴진다.

모명재 앞 공간에 이순신과 두사충이 전쟁 중에 술 한 잔을 나누며 위로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 송의호]
두사충, 노량에서 전사한 이순신의 묏자리를 잡아 주다
왜는 패전이 짙어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마저 사망하자 본국으로 철군한다. 긴 전쟁은 끝이 났다. 두사충은 귀국하는 명나라 군사와 함께 압록강까지 갔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동행 대신 이별을 선택한다. 명나라 국운이 다한 것을 예견한 것이다.
두사충은 조선으로 귀화해 대구에 터전을 잡는다. 이후 대륙에는 청나라가 들어섰다. 두사충은 그때부터 자신의 호를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의 ‘모명’으로 지었다. 동네 이름도 ‘대명(大明)’이라 불렀다. 지금 대구 대명동의 유래이기도 하다.
두사충은 풍수로도 이름을 얻었다. 모명은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의 아산 금성산 묏자리를 잡는다. 충무공 후손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모명재 앞마당엔 신도비(神道碑) 하나가 서 있다. 비문은 충무공의 7대손으로 삼도통제사를 지낸 이인수가 썼다.
그 경위가 새겨져 있다. 1800년(정조 24) 이인수는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모명의 6대손 두경보를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는 모명이 조선에서 삶을 마치고 조선 땅에 묻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다. 무덤은 자신의 관할구역에 있었다. 돌아와 비문을 쓴다. 충무공 후손다운 성심이다.
두사충의 무덤은 모명재 뒷산에 조성돼 있다. 이날 두정택 후손이 묘소를 안내했다. “모명 후손은 지금 전국에 수백 명 정도뿐입니다.” 노거수 배롱나무가 묘소를 지키고 있었다.
임진왜란은 침략국 토요토미 정권과 조선을 지원한 명나라를 멸망시켰다.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였다. 남는 게 있다면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뿐이니…. 전쟁의 교훈일 것이다. (참고자료: 모명선생실기, 월간중앙 2018년 6월 ‘선비정신의 미학’ 두사충)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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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명재에서 다시 충무공 이순신의 향기를 맡다|작성자 범물노인복지관